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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Block Chain)기반 개인 간(P2P) 전력 거래 시스템인 ‘파워레저(Power Led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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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Block Chain)기반 개인 간(P2P) 전력 거래 시스템인파워레저(Power Ledger)

 

집에서 만든 전기, 이웃끼리 사고팔고..블록체인 믿고 거래한다

 

호주의 개인 간 전력 거래 시스템

 

 

지난달 3(현지시간) 찾은 호주의 서부 항구도시인 프리맨틀시에 위치한 마틴 안다의 주택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안다는파워레저프로그램을 이용해 낮 동안 모아진 태양광 에너지를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미리 설정해둔 가격에 따라 이웃과 태양광 에너지를 사고판다.

 

한전이 독점한 한국과 달리 여러 업체가 있는 호주 소비자가 각기 다른 업체 연결돼 있어 개인 간 거래는 비효율적

지난해 123일 호주의 서부 항구도시인 프리맨틀시. 마틴 안다(58)는 밤 10시 퇴근 후 컴퓨터를 켰다. 그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오늘 모은 전기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낮 동안 지붕 위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을 통해 모은 태양광 에너지 전력과 거래 체결 시스템을 확인한다. 그는 전날 밤 1㎾당 최대 9.9센트면 사고, 최소 14센트에 팔도록 가격 설정을 해뒀다. 이날은 거래가 안됐지만 설정해둔 가격대에 사려는 소비자가 있다면 안다도 모르는 사이에 거래는 이뤄지고, 안다 집에 모아둔 태양광 에너지는 이웃에게 전달된다. 그 역시 태양광 에너지를 이웃 주민으로부터 언제든지 살 수 있다. “에너지 프로슈머 세상이 된 것”(동국대 박성준 블록체인센터장)이다.

 

안다가 블록체인 기반 개인 간(P2P) 전력 거래 시스템인파워레저(Power Ledger)’를 이용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이었다. 과거에는 일방적으로 거대 전력회사에서 에너지를 공급받기만 하다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서 전기를 스스로 만들어 쓰는자급자족이 가능해졌다. 이제는 남는 전력을 이웃에게 직접 판매까지 할 수 있게 됐다. 개인끼리 전력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한 매개체는블록체인이다.

 

안다는버려질 수도 있는 에너지인데 지금은 재사용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지구환경 보호를 위해서도 좋은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 블록체인으로 개인끼리 전력 거래

데이터를 여러 블록에 나눠서 저장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에너지 산업에까지 파고들었다. 세계 최대 비영리 민간 에너지기구인 세계에너지협의회(WEC) 2017 11월 보고서에서에너지 업계는 금융업계를 제외하고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데 가장 앞선 분야라고 평가했다.

 

프리맨틀시에서는 개인 간 에너지 거래가 시범적이지만 실제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에너지를 개인끼리 사고팔 수 있도록 블록체인 플랫폼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회사파워레저를 찾았다. 파워레저는 퍼스 시내 중심가 빌딩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태양을 상징하는파워레저로고가 적힌 반팔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젬마 그린 회장은 에너지와 블록체인을 결합하게 된 계기부터 설명했다.

 

그는 2012년 서호주의 커튼대 교수와 대화하다가전력시장의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발전소와 전기회사라는 중앙화된 시스템을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친환경적으로 새롭게 만들 수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박사학위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이미 거대한 정부와 기업이 장악한 시장에서 개인의 전력 거래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장치인 소프트웨어가 없었다.

2016 1월 지인으로부터 블록체인 개발자들을 소개받았다. 이들은 블록체인으로 개인 간 거래를 실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고, 그 기록을 모두가 믿을 수 있도록 공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린 회장은사실 처음 블록체인이나 비트코인 기술을 들었을 때는 말도 안되는 소리, 어리석은(stupid)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면서그러다가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블록체인과 에너지를 접목시킬 수 있다는 글을 봤고 4개월 뒤 바로 회사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개인 간 에너지 거래가 일어나는 구조는 쉽게 말해 온라인 장터와 비슷하다. 낮에 각 가정에서 태양광 패널을 통해 에너지를 모은다. 개인들은 파워레저 플랫폼에서 직접 판매 또는 구매 가격을 설정할 수 있다. 모은 에너지양과 가격 설정 모두 블록체인에 기록된다. 소비자이자 생산자인 개인이 각자 팔려는 가격과 사려는 가격을 설정해두면 30분마다 시스템이 자동적으로 업데이트를 거쳐 거래가 이뤄지도록 한다. 가격이 맞아 거래가 체결되면 생산된 태양광 에너지가 소비자인 이웃의 집으로 옮겨가는 것은 기존 전력회사의 전력망을 이용한다.

 

에너지 거래 플랫폼 제공 스타트업 기업파워레저블록체인으로 난점 해결전력 생산·거래가진짜임을 보증

 

이 과정에서 기존 전력회사(서호주의 시너지 회사)와 파워레저는 각각 이용 수수료를 받는다. 이 점 때문에 전력회사도 개인 간 전력 거래를 환영한다. 물론 이 사업이 가능했던 데에는 호주 각 가정의 3분의 1 이상이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시범사업은 프리맨틀시 40개 가구를 대상으로 지난해 1123일 시작했다. 파워레저와 서호주 커튼대, 머독대, 호주의 발전소 웨스턴파워, 전력회사 시너지, 정부 소유 수자원공사 격인 워터코프, 정부 건설사 랜드코프, 프리맨틀시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호주 정부가 250만호주달러( 20억원)를 지원했다. 파워레저는 이와 별도로 2년 전 가상통화 공개(ICO)를 통해 전 세계 투자자로부터 2600만호주달러를 모았다.

 

개인 간 에너지 거래가 주는 장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보다 저렴하게 에너지를 살 수 있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버려지는 에너지 없이 다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동 연구자인 커튼대 지속가능성정책연구소 칼라 레이놀즈 매니저는사람마다 다르지만 어떤 사람은 하루에도 몇번씩 가격을 바꾸고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면서지금까지 사용자들의 반응을 보면, 아침에 커피 한잔 마시면서 가격을 조정할 수 있으니까 편하다고도 하고, 자기 지역의 깨끗한 에너지를 주변 이웃에게 팔 수도 있고 살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마틴 안다가 퇴근 후 자신의 집에서 노트북을 열고 블록체인 거래 플랫폼을 통해 이날 태양광 전력이 얼마나 모였는지, 얼마에 거래가 이뤄졌는지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이미지 크게 보기

 

마틴 안다가 퇴근 후 자신의 집에서 노트북을 열고 블록체인 거래 플랫폼을 통해 이날 태양광 전력이 얼마나 모였는지, 얼마에 거래가 이뤄졌는지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믿을 수 없는 온라인 거래에 신뢰 부여

여기서 블록체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현재 한국도 에너지를 개인이 생산하고 중개업체에 팔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수수료와 시간이 들어간다. 블록체인은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기존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꾸고 대체하는 게 아니라 개선하는 것이다.


특히 호주의 전력 거래 산업은 한국의 한국전력처럼 독점한 게 아니라 여러 업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소비자가 각기 다른 전력 소매업체와 연결돼 있으니 개인 간 거래를 하기엔 비효율적이다. 복수의 업체가 각기 자료를 공개해야 하고 서로 원하는 가격이 맞아떨어져야 거래가 이뤄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은 실시간으로 데이터가 기록되고 여러 네트워크에 분산 저장되는 거래 장부이다. 하나의 저장소인 블록에 손을 대려면 다른 여러 블록까지 다 고쳐야 하기 때문에 블록체인은 위조·변조가 방지되는 기술이다. , 온라인상 어딘가 있을 상대방과 나의 거래가진짜라는 신뢰성을 담보해주는 기술이다.

 

에너지 거래에도 바로 이 점이 활용된다. 각 가정의 태양광 패널에서 전력이 생산되는 즉시 블록체인에 기록이 전송된다. 예전 같으면 소비자가 온라인상에서 전기를 개인으로부터 사려고 해도 상대방을 100% 믿을 수 없다. 상대방을 본 적도 없고, 실제로 전기를 생산했는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직거래를 하지 않는 이상 언제든 사기 가능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이 에너지 생산과 거래가진짜라고 보증을 해준다. 전력회사를 거치지 않고도 이 거래가 믿을 수 있는 거래라고 보장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들이 각자 전기를 생산해내고 각자얼마 이하면 사고, 얼마 이상이면 팔라는 설정에 따라 거래가 바로 이뤄질 수 있다.



효율성도 블록체인의 장점이다. 기존에 발전소를 거쳐 전력회사까지 오고 소비자가 전기를 사용하고 전기요금 청구서가 날아오기까지 60~90일 걸리던 과정이 단 몇초, 한순간으로 단축된다. 전력회사의개입이 없기 때문에 중간 거래비용도 확 줄어든다. 블록체인이 에너지 거래의비효율성을 효율적으로 바꿨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익명화돼 있어 개인의 컴퓨터 모니터상에서 거래 당사자가 구체적으로 어느 집 누구인지까지 개인이 직접 알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기존의 발전소·전력회사·소비자로 통하는 연결 구조 전기 생산부터 소비·금액 청구까지 60~90일 걸려 블록체인은 전력회사 개입 없어 단 몇 초면 전 과정 완결

 

파워레저는 새로운 태양광 패널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종류의 배터리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블록체인을 이용해 누가 얼마만큼, 누구에게, 언제 팔고 거래했는지 기록을 추적하는 망을 제공하는 곳이다. 일종의 에너지 직거래 장터를 여는 회사인 셈이다.


그린 회장은 블록체인이 없었다면 개인 간 전력 거래는 이뤄지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전력시장은 발전소에서 생산되고 도매시장을 거쳐 소비자가 영수증을 받는 데까지 60~90일가량 걸려 굉장히 비효율적이라며 블록체인은 기록체계를 실시간으로 바꿀 수 있고, 따라서 거래 명세서를 바로바로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누군가 데이터를 조작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 간 거래도 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그린 회장은 그러나 스스로 블록체인 맹신자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블록체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면서적용할 수 있는 특정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특정 분야가 바로 에너지이다. 블록체인 기술로 현존하는 전력 거래시장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현존하지 않는 개인 간 거래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워레저의 공동설립자 가운데 전력회사 출신도 있다. 데이비드 마틴 공동설립자는 서호주 전력회사인 웨스턴파워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그는처음 전력산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 담당 매니저가에너지 산업은 규모의 산업이라고 했는데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라면서블록체인으로 작고 분산된 에너지 산업, 지역단위의 저비용·저탄소·소규모 에너지 거래로 변환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워레저의 사업은 호주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태국 정부, 일본 간사이전력 등과 손을 잡고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시범사업은 올해 6월쯤 논문으로 결과가 발표된다. 이를 위해 커튼대는 파워레저 시범사업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시범사업이 지난해 11월 시작되기 6개월 전부터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했고, 전기 사용료 등을 비교하기 위해서 전력 사용도 추적했다.


칼라 레이놀즈는전기 생산뿐 아니라 전기 사용을 어떤 시간대에 얼마만큼 하는지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추적하고 있다앞으로는 각 가정에서 잉여전력이 많이 남는 시간대에 에너지를 구입해 그 시간에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를 돌리는 등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설정해 나가는 방향까지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

거래내역 장부를 여러 개로 분산 보관하는데이터 저장 기술

블록체인은 장부에 거래내역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여러 개에 나눠 똑같이 분산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이다. ‘블록’ ‘체인’ ‘분산’ ‘신뢰 4가지 핵심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보상으로 주어지는 가상통화까지 관련 개념을 간략히 정리했다. 아래 내용은 전명산의 <블록체인 거번먼트>와 마이클 J 케이시·폴 바냐의 <트루스머신> 책을 참고했다.


■ 블록 : 거래내역 등 여러 가지 정보가 담긴 저장소이다. 특정한 시간 동안 거래된 내역과 관련 정보를 묶어 하나의 파일로 만든 것이 블록이다.

 

■ 체인 : 블록은 서로 연결돼 있다. 예를 들어 100번째 블록을 만들 때는 99번째 블록의 정보를 섞어 암호화한다. 101번째 블록 역시 100번째 블록의 정보가 담긴다. 99번이나 100번이나 101번이나 블록들은 서로 다른 파일이지만 서로 연결돼 있다. 블록체인이란 서로 연결돼 있는 파일들의 묶음이다. 누군가 100번째 블록을 조작한다면 이는 앞뒤 블록의 정보와 다르기 때문에 조작된 파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 개발자들은 블록체인 전체를 위·변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 분산 : 흔히 블록체인은 똑같은 장부가 분산돼 있다고 한다. 이를 가장 잘 설명한 비유가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똑같은 문서를 총 다섯 군데 분산해 보관했다. 5개 모두 진본이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이다. 블록체인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컴퓨터에 똑같은 파일(블록)들이 보관된다. 어떤 한 컴퓨터에서 장부가 업데이트되면 동시에 다른 컴퓨터에서도 장부를 똑같이 업데이트한다.

 

■ 신뢰 : 블록체인의 구조 덕분에 참여자가 얻을 수 있는 결과는신뢰이다. ‘진짜장부가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져 있어 중개기관의 개입이나 조작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고, 중개자 개입 없이 개인끼리 거래가 가능해진다.

 

■ 가상통화 : 분산형 시스템에 참여해 암호화된 블록을 새로 만들어낸 사람을 채굴자라고 하며 이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이다. 모든 대중에게 열려 있는퍼블릭블록체인은 채굴이라는 시스템과 보상을 주기 위해 가상통화가 필요하지만 모든 블록체인에 가상통화가 필요한 건 아니다. 한정된 사람들만 사용하는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는 가상통화가 필수적인 건 아니다.

 

 

 

 

 

 

블록체인(Block Chain) 계좌로 난민 기금 운영..은행 수수료 59만달러 건졌다

블록체인 - 환상인가 혁신인가    /  중간자를 없애라

 

내전을 피해 요르단으로 피신한 시리아 난민들이 지난달 10(현지시간) 요르단 자타리 난민 캠프의 한 슈퍼마켓에서블록체인과 연동된홍채 인식 간편결제(아이페이·Eye Pay)’로 물건을 구입하고 있다. 홍채 인식 방식으로 자신이 난민임을 증명하면 본인의 블록체인 계좌에서 상품 대금이 결제된다.


유엔 세계식량계획의 ‘요르단 난민 캠프’ 지원 체계

홍채 인증 ‘간편결제’ 시스템 구축한 지정 마트에서 식량 구매 거래 정보 저장 후 한꺼번에 대금 청구…기금 사용 투명성도 높여 거대 국제구호기구에서 ‘신기술’ 선도적 도입·성공 사례로 주목


지난달 10일 시리아 국경과 인접한 요르단 북부 자타리 난민 캠프. 이곳의 남북을 잇는 일명 ‘샹젤리제’ 거리에 창문 하나를 겨우 낸 작은 빵집에서 칼리드(44)가 ‘하리사(Harissa)’를 팔고 있었다. 단단한 듀럼밀을 갈아 만든 세몰리나 밀가루에 코코넛 파우더를 함께 반죽해 구운 뒤, 설탕 시럽을 부어 먹는 시리아식 디저트다. 칼리드가 하리사를 플라스틱 주걱으로 쓱쓱 눌러 자르더니 몇 조각 건넸다. 단맛으로 혀가 얼얼해졌다.


“고향에서도 하리사를 만들어 팔았어요.” 그의 고향 다라(Daraa) 9년째 그치지 않는 시리아 내전이 촉발된 지역이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시리아에서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가 활발하게 벌어졌다. 특히 다라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독재자를 비판하는 그라피티를 그린 13세 소년이 정부군에 고문당해 숨진 것이 발단이었다. 정부군은 시민을 향해 실탄을 쏘아댔다. 유혈진압은 내전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수십만명이 사망했다.


내전이 시작되자 칼리드는 가족과 함께 국경을 넘었다. 그런 난민들이 모여 꾸려진 곳이 자타리 캠프다. 자타리가 밀려드는 난민을 다 받을 수 없게 되자, 요르단 정부는 차량으로 1시간 거리에 아즈락 캠프를 만들어 난민들을 수용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자타리와 아즈락에 각각 73000, 37000명의 난민이 등록돼 있다. 암만 등 요르단 전역으로 흩어진, 캠프 밖 난민은 65만명에 이른다.


샹젤리제 거리는 전날 내린 비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패어 있었다. 프랑스 파리 명품거리 이름을 따왔지만, 실제로는 난민들이 청과물, 장난감, 전자제품, , 담배 등을 사고파는 시장거리다. 짐수레 끄는 당나귀, 낡은 자동차, 자전거가 간간이 지나다녔다. 난민 캠프라기보다는 평화로운 시골 장터 같았다.


칼리드는 “손님이 많진 않다. 벌이가 그렇게 좋진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하리사만 팔아 생계를 잇기란 요원한 일이다. 칼리드가 그나마 난민촌에서도 시리아에서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유엔 등 국제기구와 구호단체들의 각종 지원 사업 덕분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캠프 난민 1인당 한 달에 23디나르( 36000)를 제공한다. 난민의 은행계좌로 송금하는 것도, 현찰을 직접 주는 것도 아니다. ‘블록체인 계좌’에 지원금을 넣어준다. 블록체인 계좌에서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통화가 아니라, 요르단 디나르를 기반으로 한 거래가 이뤄진다. WFP는 왜 난민촌에 블록체인을 도입했을까. 블록체인은 난민들의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 홍채로 인증, 수초 만에 결제

캠프 외곽도로 ‘로드링’을 따라 캠프 서북쪽 타즈위드 센터에 다다랐다. 컨테이너로 만든 조립식 건물 앞에 WFP와 요르단 깃발이 함께 걸려 있다. 타즈위드는 난민들이 WFP에서 받은 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는 캠프 내 민간 슈퍼마켓이다. 이런 마트가 자타리에 2, 아즈락에 1곳이 있다. 마트 입구에는 WFP의 난민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15개 국가들이 기부금 순으로 소개돼 있다. 2014, 2017, 2018 3년간 234만달러( 26억원)를 지원한 한국의 태극기는 일본, 이탈리아, 쿠웨이트 국기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타즈위드는 오로지 먹을거리만 판매한다. 대부분 요르단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한쪽에 호박, 양파, 사과, 코코넛, 바나나 같은 신선 채소와 과일이 그득하다. 2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했다는 시리아 난민 자셈(24)은 매대에서 분주히 감자를 솎아내고 있었다. “이건 팔기에 너무 작고, 이건 너무 크거든요.” 자셈은 “국경을 넘을 때는 굉장히 두려웠다. 어느새 5년이 훌쩍 지났고 이곳에서 첫 직장까지 얻었다”고 했다. 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하고 한 달에 200디나르를 번다. 요르단의 최저임금 수준이다. 가족 12명이 생계를 잇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자셈도 WFP로부터 매달 23디나르를 지원받는다. 그는 직장인 타즈위드 센터에서 필요한 음식들을 구입한다.


계산대 앞에는 ‘담배, 콜라, ,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은 WFP의 지원금으로 구입할 수 없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명색이 세계 ‘식량’ 계획인데 영양가 없고, 해로운 것들을 구입하도록 난민을 지원할 수는 없잖아요?” 난민들에게 ‘푸드가이’라고 불리는 WFP 요르단사무소 직원 바르다가위가 말했다.

 

난민들이 WFP에서 받은 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는 캠프 내 민간 슈퍼마켓 \'타즈위드 센터\'

 

무함마드의 아버지라고 자신을 소개한 71세 노인이 요구르트, 달걀, 설탕 등을 골라 계산대 앞에 섰다. 계산원이 상품들의 바코드를 찍은 뒤, 노인의 눈앞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홍채를 인식하는 카메라였다. 홍채는 사람마다 모양이 달라, 지문처럼 자신을 나타내거나 인증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계산대 모니터에 ‘아이페이(Eye Pay)’라는 글씨와 함께 결제창이 떴다. 캠프를 총괄하는 유엔난민기구는 ‘아이 클라우드(Eye Cloud)’라는 클라우드 서버에 난민 정보를 모아둔다. 아이페이는 홍채 인식으로 아이 클라우드에 접속해 자신이 난민임을 증명한 뒤, 본인 계좌에서 상품 대금을 결제하는 일종의 ‘간편결제’다. 유엔난민기구와 WFP 2016년 도입한 기술이다. 결제창에 ‘유엔난민기구 접속 중’이란 글자가 보이더니, ‘인증’ ‘계좌 잔액 확인’ ‘결제 승인’ 문구가 연달아 나타났다. 홍채 인식부터 영수증 출력까지 걸린 시간은 7~8초였다. “아주 편리하지. 우리 같은 노인네도 눈만 대면 뭐든지 살 수 있거든.

                                                              

원래 아이페이는 은행계좌와 연동돼 있었다. WFP는 은행에 가상계좌를 개설하고 난민들의 계좌로 사용했다. 매월 한차례씩 계좌에 지원금을 넣어줬다. 아이페이 기술이 도입되기 전에는, 난민들이 은행계좌에 연동된 현금카드를 들고 다니며 물건을 구입했다. 은행계좌를 통해 돈을 주는 방식은, 현물이나 종이바우처를 지급하는 전통적인 지원방식보다 효과적이었다. 물자는 필요한 이들에게 효율적으로 배분됐고, 난민들은 시리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계를 스스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은행계좌 시스템은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금융기관은 거래금액의 1.5%를 수수료로 챙겨갔다. 난민들의 거래 내역이 캠프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도 부담이었다. 은행을 거치지 않고 슈퍼마켓과 직거래하는 방법은 없을까. 슈퍼마켓이 난민들의 구매 내역을 자신들의 장부에 모두 기록한 뒤, 한꺼번에 WFP에 청구하는 방식은 어떨까. 문제는 마트가 장부를 조작하고 실제 난민들의 구매 내역보다 더 많은 금액을 청구할 경우, 이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은행을 대체해 장부를 기록하고 검증할 ‘신뢰받는 제3자’를 끌어들여야 한다. 적어도 블록체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 평범한 일상을 만드는 기술

WFP는 은행계좌를 블록체인 계좌로 바꾸는 ‘빌딩블록(Building Block)’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7 5월 아즈락 캠프에 시범적용한 뒤, 지난해 자타리 캠프로 확대했다. 블록체인은 다수가 공유하는 전자장부다. 난민이 마트에서 식료품을 구매할 때마다 난민과 마트의 블록체인 장부에 내역이 기록된다. 블록체인은 시스템 내 모든 참여자들에게 이 장부를 배포한다. 타즈위드 센터뿐 아니라 사업을 총괄하는 WFP도 난민들의 거래 내역이 담긴 진본 장부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이에게 개방된 ‘퍼블릭 블록체인’은 장부가 만들어지면, 이를 검증하는 작업을 벌인다. 블록체인은 장부를 검증한 이에게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통화를 보상으로 지급한다. 다만 WFP의 ‘빌딩블록’은 거래 당사자 등 소수만 참여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별도의 장부 검증 절차가 요구되지 않는다. 당연히 장부 검증의 보상책인 가상통화도 사용하지 않는다.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장부가 있으니 은행의 역할은 줄어들었다. WFP는 자신이 보유한 블록체인 장부를 보고 매주 타즈위드의 은행계좌로 난민들이 구입한 물품 대금을 송금하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WFP 2017 5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3940만달러를 난민들에게 지급했다. 이 금액을 과거처럼 은행계좌를 통해 지원했다면 1.5% 591000달러를 수수료로 더 지불했어야 한다. 물론 타즈위드의 모든 거래가 다 블록체인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바르다가위는 “시각장애인 등 홍채 인식이 어려운 일부 난민들은 여전히 은행계좌와 연동된 현금카드를 사용한다. 현금카드를 사용하는 이들은 십수명 정도”라고 말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당신의 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타즈위드 센터 곳곳에는 ‘핫라인’ 안내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핫라인에는 매장 서비스, 상품 품질 등 온갖 문의가 접수된다. 바르다가위는 “지원금이 언제쯤 계좌에 들어오냐는 전화가 제일 많다”고 했다. 지원금은 가족 규모에 따라 입금되는 날이 다르다. “한날한시에 지원금이 들어오면 그날 마트에 사람들이 몰리게 되잖아요. 마트에 물건 떨어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한 여성이 아이 둘과 함께 계산대에 섰지만 물건을 구입할 수 없었다. 그녀의 블록체인 계좌에 돈이 한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계산대에 놓인 상품들을 집어들기 시작했다. 더 어린 남자아이가 “왜 다시 갖다두냐”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지원금이 입금됐다고 생각하고 조카들과 함께 왔어요. 그런데 입금날이 내일이라고 하네요.” 내 지갑에서 디나르를 꺼내 쥐여주고 싶었지만 WFP 직원들은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며 만류했다. “많은 난민들이 지금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어요. 조심해야 해요.” 난민의 자존심에 대한 배려이자, 특정인만 돕는 모양새에 대한 우려였다.


요르단 정부는 최근 경제 위기로 빵 보조금을 삭감했다. 캠프 밖 난민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WFP가 캠프 밖 빈곤 난민에게 제공하는 지원금을 월 3~5디나르씩 인상한 이유다. WFP는 현재까지 이 지원금을 은행계좌를 통해 지급하고 있지만, 향후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유엔여성기금도 WFP의 블록체인을 통해 일하는 여성 난민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거대한 국제기구가 블록체인 같은 신기술을 어떻게 선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바르다가위가 답했다. “난민들은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할 권리가 있어요. 은행계좌, 핫라인, 아이페이, 블록체인 등 WFP가 도입한 서비스는 다 그 연장선상에 있어요. 난민들에게 일상을 되찾아주는 것이 그들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고, 바로 우리의 일이에요.(자료=경향 커버스토리)